신대륙 발견은 미국과 유럽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1

유럽인의 미국 발견은 오랜 기간 교류가 없었던 대륙 간에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지극히 신속하고도 대규모적인 접촉을 야기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탐험대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기독교의 전파라는 종교적 열정 등에 대해서도 자극을 받았던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동기는 아마 경제적 이익의 획득이 아니였을까 생각이 든다. 애초에는 향료무역을 주도하기 위하여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가는 해로를 찾고자 하였으나, 자신들이 발견한 땅이 신대륙임을 알게 된 뒤 그 땅에서 어떠한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찾을 것인가에 골몰 하였을것이다.

유럽이 신대륙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가장 직접적인 이득은 원주민들이 보유하고 있었던 귀금속이었을 것이다. 남아메리카 북부, 멕시코에 발달된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금방 밝혀졌고,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귀금속의 가치는 유럽인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을것이다. 코르테스는 멕시코의 아즈텍제국을 손에 넣었고, 1530년대에는 피사로가 페루의 잉카제국을 정복하였다. 16세기 말이 되어 에스파냐는 북으로는 캘리포니아 남부와 플로리다를, 남으로는 브라질을 제외한 남아메리카 전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통제하게 되었다.

정복은 아주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행 되었으며, 유럽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치밀한 전술로 아메리카의 제국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더 큰 위험은 유럽인이 가져온 세균, 바이러스 였을 것이다. 감기, 인플루엔자, 홍역, 천연두, 발진티푸스 등 유럽인에 의하여 아메리카로 유입된 다양한 바이러스성 및 세균성 질병들은 이에대한 면연력이 전혀 없었던 아메리카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된 인명 손실은 실제로 전대미문의 규모였다.

약탈할 수 있는 원주민의 귀금속이 바닥을 드러내자 유럽의 채굴방법을 동원하여 귀금속 광산을 개발하는 노력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멕시코와 안데스 지방에서 은광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채굴을 위하여 원주민 노동력이 무자비하고 가혹하게 사용되었으며, 전염병과 혹독한 처우로 원주민의 수가 급격히 격감하자 유럽인들은 이들을 대체할 노동공급원을 찾아야만 했을것이다. 해결책은 아프리카에서 구해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에스파냐인은 16세기 초부터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삼기 위하여 서구로 데려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수송된 노에 수는 무려 1,000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어떤 연구에 따르면 16세기에는 약 30만명의 노예가 아메리카로 끌려갔으며, 17세기에는 190만명, 18세기에는 670만명 그리고 19세기에는 260만명 가량이 대서양을 건너갔다고 한다.

노예가 경제적 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부각되면서 노예에 대한 유럽인의 의식은 노예무역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는 노예무역 폐지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18세기 후반 이전까지 계속되었으며, 당대의 저명한 정치가나 학자등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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